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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00:18 Sloppy Fixation

두광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등 뒤로 우당탕 큰 소리가 나고 애들이 술렁거렸지만 기광은 미동도 없이 문제에 집중했다. 하지만 교탁을 탕탕 두드려 애들에게 주의를 준 학주가, 윤두준 괜찮아? 하는 목소리에는 열심히 움직이던 샤프가 우뚝 멈춰섰다. 기광이 뒤를 돌아보자 짙은 눈썹 사이의 미간을 잔뜩 찌푸린 두준이 교실바닥에서 배를 안은 채 웅크리고 있다.


" 다들 조용히 안해?"

기분이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아무튼 성격이 개같아 별명만은 귀엽게도 강아지인 학주의 말이라 애들은 다시 등을 돌리고 기광도 다시 시험지로 눈을 돌렸다. 안 그래도 수학에 약한데 두준이 신경 쓰여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검산해야 하는데......'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곗바늘 소리가 귓가에서 스테레오로 들려오자 초조해진 기광이 샤프 꼭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흩어진 정신을 모으려고 애쓰는 동안 구급차가 도착했다. 두준이 실려나가고도 집중이 되지않아 결국 제대로 검산을 하지 못한채 시험지를 제출한 기광이 풀이 죽어 자리로 돌아와 핸드폰을 켜기 무섭게 드르륵 문자가 온다.

[오오 간호사누나 예뻐]

자신은 걱정이 되어서 검산도 제대로 못했는데 구급차까지 타고 실려나간 녀석의 문자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 기광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문자보낼 정신이 있는 걸 보니 큰일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자 조금 안심이 되어 포옥 한숨이 나왔다.

 

 

윤두준은 맹장이었고 기광은 전교석차 4등이 떨어졌다. 여름에 상위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자율학습과 더불어 특강학원을 다니기로 한건 기광의 자의였다.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할일도 없고 다른애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편이 안심이 된다. 두준은 그런 기광을 소심하다고 놀리지만 기광은 하교할 때 기다려주지 않거나 체육복을 먼저 갈아입었다고 삐지는 두준이 훨씬 소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두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야, 윤두준은 소심하니까.

자율학습이 끝나고 학원 갈 시간까지 혼자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하다 창문밖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두준이 애들 몇명과 농구를 하고 있고 여자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구경하는 중.

하긴, 농구하는 윤두준이 좀 멋있긴 하지.

기광은 어릴 때부터 두준과 같이 다니면 조금 우쭐한 기분이 되곤 했다. 두준이는 남자가 봐도 잘 생겼고 키도 크고 붙임성도 좋고... 두준의 장점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던 기광은 두준이 드리블을 하며 석현이와 태호를 제끼고 슛을 넣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우와아,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순간, 애들에 둘러싸여 승리의 브이를 마구 날리던 두준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손을 흔들어보았는데 두준이 금새 고개를 돌리고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하긴 소머즈도 아니고 운동장에서 2층에 있는 교실이 보일리가. 기분 탓이겠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운 것이 뻘쭘해진 기광이 주위를 쓰윽 살피고는 털썩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 이기광, 일어나."

목에 닿은 차가운 느낌에 눈을 번쩍 뜨니 땀인지 물인지 아무튼 흠뻑 젖어있는 두준이 이온음료를 내민다. 따뜻한 햇살에 정신이 점점 몽롱해진다 했더니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기광은 아직 잠기운이 달아나지 않아 감기는 눈을 뜨려고 애쓰다 이마에 두준이 음료수 캔을 대어주자 앗 차거, 하면서 두준의 가슴팍을 휙 밀쳐낸다.

"방학인데 왜 학교에서 자고 있어."

넘어질뻔 했는데도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기광의 옆에 와서 선 두준이 기광의 가지런한 뒷통수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그냥 보강."

" 전교 일등도 보강을 하냐?"

두준이 한쪽 눈썹을 잔뜩 올리고 기광을 본다.

"5등이야."

기광은 대답 뒤에 너 때문이잖아, 하고 붙이려다 그만 두었다. 집중 못하고 시험을 망친건 자신의 잘못이다. 게다가 맹장이 터진 것은 두준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는 일인데.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넌 왜 방학에 학교까지 와서 농구를 해, 하고 말을 돌려보았다.

"나 재시험. 오늘은 국어랑 물리랑 음 세계사? 또 뭐봤더라. 암튼 내일이랑 모레 또 봐야 돼."

"근데 농구하고 있냐."

오늘 본 시험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쯧쯧, 하고 혀를 찬 기광이 한심한 눈으로 두준을 쳐다보았지만 두준은 태평한 목소리로 이제와서 책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며 푹 젖은 티셔츠를 선풍기 바람에 대고 펄럭거린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좀처럼 자기 의사를 밝히는 법이 없는 기광의 단호한 말투에 깜짝 놀란 두준이 선풍기에서 시선을 들려 기광을 쳐다본다. 기광은 조금 민망해져서 뭐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며 얼버무렸다.

"너같은 전교일등이야 당연히 서울대로 갈텐데 뭐가 걱정이야."

어깨에 손을 척 올리는 두준을 보며 나말고 너말이야, 너. 하고 가까이 다가온 두준의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쓰윽 밀어낸다.

"아줌마가 얼마나 걱정이신지 알아? 있다가 내 요점정리 노트랑 시험지 갖다줄게, 그거라도 봐. 나 학원간다."

가방을 척척 챙겨서 자리를 일어나는 기광의 등 뒤로 따라온 두준이 헤드락을 걸어 턱으로 기광의 정수리를 누른 채로 기광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등 뒤로 달라붙는 두준의 땀에 젖은 셔츠는 퍽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기광은 별 말 없이 두준을 반쯤 업은 채로 교실을 나섰다.

 

 


"아줌마, 두준이는요?"

"글쎄 씻나보다. 위에 올라가봐."

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한 기광은 가지런히 운동화를 벗어놓고 두준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간다. 기광의 집과 겨우 한블럭 거리인 두준의 집에는 워낙 어릴 때부터 드나들어서 제집처럼 익숙하다. 주로 두준의 집에서는 몰래 술을 먹거나 빨간 비디오를 보거나 하는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아주머니를 뵐 때마다 조금 죄송한 기분이 되기는 하지만.

브리프만 입은 채로 침대에 엎드려 만화책을 뒤적거리던 두준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기광을 발견하고는 왔어? 하며 몸을 일으킨다.

"어머니도 계신데 옷 좀 입어."

훌렁 벗은 윗몸에 기광이 쿠션을 던지자 두준은 아, 뭐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어때 하며 궁시렁 거리면서도 엎드렸던 몸을 뒤집는다.

어우 이 야만인, 하며 한소리 하던 기광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이제 보니 두준의 배에 길게 상처가 있다. 송충이 같은 실밥도. 기광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두준의 상처를 본다.

"왜 그렇게 봐. 오빠가 좀 몸이 되긴 하지만."

실실 웃던 두준이 심각한 기광의 표정을 보고는 뭔가 하는 눈으로 기광의 눈길이 닿은 곳을 본다.

"아, 이거 맹장?"

두준이 제 상처를 쓱 내려다보고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한다.

"아프겠다."

"이게 언제적인데 아직도 아프냐."

무심한 손으로 상처를 쓱 만진 두준이 걱정스러운 눈을 한 기광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만져봐도 돼?"

"어."

보고만 있어도 손발에 힘이 빠진다. 엄마가 의대에 가길 원하는 걸 알고 있지만 이래서야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기광은 생각한다. 정신과나 치과라면 괜찮을까. 으으, 그래도 이런거 다 공부해야겠지. 기광은 실밥 위를 더듬으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진짜로 아프진 않은데..."

기광이 생각에 빠진 동안 두준은 배꼽 근처에 기광의 가는 숨이 닿았다 떨어졌다 해서 간지러움을 참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는 중이었다. 상처에 닿아있는 기광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이 모여있다. 배가 간질간질한 것도 같고 화끈거리는 것도 같고...

"나 샤워 좀."

급하게 생각난 듯 두준이 제 상처에 닿은 기광의 손을 떼어내고는 화장실로 휙 사라진다.

막 비누냄새가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안 씻은 거였나?

두준이 화장실로 사라지는 것을 본 기광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벽장을 가득 메운 책장에서 만화책을 꺼내어 침대에 출렁 다이빙을 한다.

 

 

"노트 주러왔다며, 아직 안갔어?"

맨몸에 타올만 걸친 두준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저런 이기적인 자식. 받아먹을 것만 홀랑 먹고 입닦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간다고 가면 되잖아, 하면서 기광은 두준의 집을 나섰다.

두준이 기광을 학교에서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날부터였다.

야 윤두준, 하고 부르자 두준은 움찔하고 서더니 이내 못들은척 하고 가던 길을 간다. 요섭이 왜 너네들 싸웠어 하고 묻자 두준이 그런거 아니야, 하고 요섭의 팔을 걷어낸다. 확실히 싸운 적은 없지만 요즘 두준은 좀처럼 기광 근처에서 보기 힘들었고 등하교를 같이 한지도 오래 되었다. 당번이라 일찍 가서 늦게 올때도 꼭 기다려주던 두준이었으므로 기광은 제가 뭘 잘못했나, 그 사이 몇번이나 고민했지만 딱히 집히는 것이 없었다.

"백일주 마시자. 오늘 우리집 비어."

요섭의 목소리에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기광이 얼굴을 들었다.

"윤두준도 가?"

"그럼. 술귀신이 빠질 자리가 아니지."

 

 

"너네 요즘 왜 그래?"

"뭐가?"

기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요섭이 눈짓으로 제 방문을 가리키며 너랑 윤두준 말이야, 그런다.

"계집애들처럼 화장실도 같이 가던 자식들이 오늘도 멀찍히 앉아가지고는. "

나도 몰라, 한숨을 포옥 쉰 기광이 요섭이 가리켰던 방문을 빤히 쳐다본다. 우르르 요섭의 집에 같은반 애들 예닐곱명이 몰려가서 대낮부터 술을 푸기 시작했는데 정작 술귀신이라고 불린 두준은 소주 두잔에 애저녁부터 뻗어 요섭의 방에 옮겨다놨다. 기광은 알딸딸한 맛에 슬슬 적응하고 있었다. 제사 때 한두잔 얻어마시거나 두준의 집에서 몰래 과일주 같은 건 조금씩 훔쳐먹어봤지만 본격적으로 마셔본 건 처음인데 애들이 하나둘 뻗어나가는 걸 보니 자신이 의외로 술이 센 편이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으으 백일 남았다."

요섭이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한다. 평소에 공부도 안하면서 생색은, 하고 기광이 면박을 주자 요섭이 재수없어 범생이, 하며 지지 않고 반박 한다.

"화장실 어디야?"

요섭과 둘이 살아남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드디어 조금 취해 발그레해진 볼을 한 기광이 비틀하며 일어선다.

잔뜩 취한 요섭은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뻗었고 그 손끝을 따라 기광은 어그적어그적 겨우 걸어간다. 문을 열었더니 화장실 대신 윤두준이 침대에 무방비하게 누워있다. 어릴 땐 같이 다니면 다들 기광이 두준의 동생인 줄 알았다. 키차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났고 덤범거리면서도 늘 기광을 챙겨주곤 했으니까.

진짜 형처럼 든든했는데...

요즘은 내도록 이 잘생긴 얼굴이 잔뜩 구겨진 것만 봤더니 새삼 새로워 기광은 손을 뻗어서 만져보았다. 잘생긴 눈썹. 멋진 코. 은근히 예쁜 입술.

간지러웠는지 끙, 소리를 낸 두준이 뒤척이자 깜짝 놀란 기광이 무릎꿇고 앉은 자세 그대로 침대에 고갤 박았다. 자는척 해야지, 생각하며 술냄새가 섞인 더운 숨을 가다듬으려 애써보면서.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쓱쓱 문지른 두준이 누운채로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동그란 뒤통수가 코앞에 있다.

"이기광, 왜 이러고 불편하게 자고 있어."

살며시 어깨를 흔들어보았지만 기광은 깨어날 기색이 없다. 몸을 일으킨 두준은 침대에서 내려와 기광을 어렵게 안아들었다.

"어우, 쪼그만게 뭐 이렇게 무거워."

두준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기광은 자는척하는게 들킬까 눈을 꼭감고 팔다리에 힘을 뺐다.

 

 

지금쯤이면 갔을까, 하고 슬쩍 눈을 떴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두준과 눈이 마주친 기광이 깜짝 놀란다.

"뭘 그렇게 놀라."

"어? 어... 그..."

당황해서 집에 가야지 엄마 걱정하겠다, 핑계를 대며 침대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나오던 기광이 이불에 발이 엉켜 쿵 떨어진다. 두준이 괜찮아? 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본다. 오랜만에 보는 상냥한 얼굴. 얼른 일어나서 괜찮다는 걸 보여줘야하는데 하필 무릎으로 떨어져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아오, 가오 안서게 하필 윤두준 앞에서...

창피해서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고 무릎을 만지는 기광 앞쪽으로 두준이 쪼그리고 앉아 등을 내민다.

"업혀."

"엉?"

"집에 가야된다며."

"어... 그렇긴 한데..."

사실 집에는 오늘 두준이네서 잔다고 말해두고 나왔지만 뒤를 돌아앉은 두준의 넓은 등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하고 업히려다가 기광은 불현듯 아까 두준이 무겁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저, 나 무거운데."

"나 힘쎄. 너 업어서 키운 거 모르냐, 이 형님이."

씩 웃는 모습은 기광이 어릴때 보아왔던 그 윤두준 그대로라서 업혀보았다. 윤두준의 등에 매달려 술병에 치킨 뼈다귀들이 뒹굴거리고 있는 거실로 나오니 애들은 벌써 다 죽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네시. 어디로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기광은 두준의 등에 업힌채로 차가운 초가을의 밤공기를 맞았다. 다리는 이제 괜찮은데도 두준은 기광을 내려주지 않았다. 짧은머리칼 사이사이로 반짝, 땀방울들이 비친다.

결국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편의점에 잠시 멈춰서야 두준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무릎은 여전히 얼얼하지만 애초에 겨우 이런걸로 걸을 수 없을리가 없었다. 멍청한 윤두준. 멍은 보기 싫게 들겠지만 어차피 반바지 입을 일도 없는 날씨. 덕분에 지난 몇달간의 냉전이 휴지기에 들어갔으니 넘어져볼만 하다고 기광은 생각한다.

편의점 밖에 내어진 테이블에 앉아있었더니 물과 숙취제거제 한병을 눈 앞에 내민 두준이 담배를 꺼내 문다. 별로 담배 같은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가끔씩 두준은 비행청소년 코스프레를 한다.

"내가,"

담배를 문 채로 웅얼거리며 내뱉은 소리에 기광이 응? 하고 대답한다.

"너랑 같은 대학은 못가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정도는 갈 수 있을 거야. 그치? 응? 그럴거야."

두준이 자신의 말에 묻고 대답하고 맞장구까지 치는 걸 보던 기광이 픽 웃는다.

"뭐야 소주 두잔 먹고 취해서 자문자답의 시간이냐."

크크크, 웃어주었더니 두준의 표정이 지나치게 시무룩해져서 기광은 얼른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하고 덧붙인다.

"왜 고등학교는 3년 밖에 안되지?"

기광은 3년도 지긋지긋해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잠자코 있어주었다.

 

 

두준은 백일주를 마신 이후 살짝 돌았는지 문제집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광에게 부쩍 말을 많이 걸었는데 대부분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기 위해서 였다.

"야, 이게 뭐 어쩌라는거야?"

슬쩍 보니 수학문제.

"일단 엑스를 구해야지. 이거 이렇게 이차방정식으로. 그 다음에..."

"이차방정식?"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하는 눈으로 보아주었더니 정말 모르는 표정이다. 허....

"윤두준아. 이건 중1때 나오는 거 잖아."

"그렇게 옛날에 배운걸 어떻게 기억해."

억울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할말이 없다.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열공 모드가 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현상이긴 한데 앞이 영 깜깜해서 기광이 어휴, 하고 한숨을 쉰다.

"그러게 갑자기 왜 안 하던 공부를 하겠다고 이래. 진작 좀 하지."

"나는 너랑 같은 학교를 못다니잖아. 그래서 그 근처라도 가야겠어."

두준이 커다란 손에 펜을 꼭 쥔 채로 눈에 힘을 주고 말하는데에는 기광도 조금 감동했다. 하긴 유치원부터 주욱 같이 다녔는데 기광도 조금은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대학을 같이 갈 수 있다는 것 같은 희망은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 따로 당연한 마음 따로다.

"니가 없는 건 잘 모르겠어. 별로인거 같애. 아무래도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너랑 안 놀아보려고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난 너랑 있는게 좋은 것 같아서."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기광이 웃으며 그러자 두준이 심각한 얼굴로 아무래도 그런가봐, 그런다.

"미쳤냐?!"

기광이 몸서리를 치자 두준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입을 겨우 연다.

"너 막 꿈에도 나와."

"꿈에서 내가 뭐하는데?"

무심한 기광의 질문에 두준은 아, 몰라 나도, 하고 얼버무리더니 이거 얼른 풀어달라니까! 소리를 지르며 문제집을 톡톡 펜으로 두드린다.

 

 

언제나와 같은 하교길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으로는 마지막 하교길을 두준과 기광은 나란히 걸었다. 쌀쌀한 바람사이로 둘은 여느 때보다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걸었다. 기광이 안녕, 하고 손을 흔들고는 먼저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두준이 인사 대신 손목을 턱 잡는다. 키는 두준보다 한뼘만큼 작지만 힘으로는 밀리지 않는데 기광은 좀처럼 두준에게 잡힌 손목을 빼낼 수가 없다.

"야, 왜이래."

기광이 쩔쩔매며 두준을 올려다보자 두준의 하얀 숨이 이마에 와닿는다.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눈매인데 부릅뜨고 있는 두준의 눈을 보니 기광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사실 싸움도 못하고 깡도 없는 녀석인데 저 눈빛에 학기초 애들은 다 윤두준이 쌈짱인 줄 알았다. 뭐 입 열자마자 금새 나사풀린 병신인게 들통났지만 아무튼 근거리에서 보면 역시 움찔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윤두준."

제차 이름을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던 두준이 어후, 이기광 너, 진짜... 같은 문장이 되지 않는 단어들을 나열하다가 뭔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듯 기광의 손목을 풀어준다. 피가 통하지 않아 두준의 손가락 모양이 허옇게 기광의 손목에 남아있다.

"너 요즘 왜 그러냐?"

기광이 손목을 돌려 풀면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두준을 보자 두준이 미안, 하고는 후다닥 달려서 제집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기광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쌀쌀한 초겨울에 잠깐 달아올랐던 소년들이 서있던 골목의 공기도 이내 차가와졌다.

 

 


_반년쯤 전에 한창 비스트에게 버닝 시작했을 때 대충 끄적거리던 건데 교정 보기도 귀찮고 더 써지지도 않을 것 같아서. 요즘의 윤두준 연예인간지 보다 보면 훈고딩 선배 포스 폴폴 날리던 데뷔 초가 그립다. 지금은 준요에 제일 끌리고 있지만 비주얼 리더는 역시 두광.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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