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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2 22:46 Sloppy Fixation
치훈재규







“재규야.”

뒤로 돌아선 익숙한 등을 보자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들기에 치훈은 대뜸 이름을 불렀다. 마음먹은 만큼 큰 목소리가 나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는데 재규가 뒤를 돌아보더니 하얀 볼을 붉게 물들이며 치훈에게로 달려와 안긴다. 어찌해야하나 조금 난감해서 엉거주춤하게 벌린 두 팔을 허공에 내젓고 있으니 재규가 야무지게 두팔을 잡아 제 허리에 감아주고는 입을 맞춘다. 순간 온몸이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물 대신 글리세린이 가득 담긴 풀에서 푹 젖은 채로 재규와 자신이 손을 잡은 채로 부유하고 있다.





삐비빅-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요란한 기계음을 내는 자명종을 눌러 끈 치훈은 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드디어 했다,
몽정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감정을 느끼는데는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만 그것은 신체적으로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거의 모든 순간에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멀쩡하게 변성기를 비롯한 이차성징을 다 겪도록 몽정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치훈은 조금 걸렸다. 일반적인 자극으로 발기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들기는 했다. 신체가 발육함으로써 겪게 되는 과정의 일부를 간접경험으로만 접하는 것에 치훈은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감정이 결여되었다고 해서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더러는 황당한 꿈도 있었기 때문에 몽정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만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인해 몽정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거니 하며 포기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 방학이었고 이미 창 밖으로는 벗꽃이 한창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속옷을 물에 행궈 빨래통에 던져넣은 치훈은 샤워기의 뜨거운 물에 몸을 비추다 불현듯 꿈의 한장면을 떠올렸다. 제 입술 위로 부드럽게 포개어지던 붉은 입술. 허리에 감기던 따뜻한 손. 아침의 기운을 빌어 슬슬 고개를 드는 아들내미를 느끼고 손을 가져다 대던 치훈이 멈칫 손을 떨군다. 몽롱한 눈빛을 하고 제게 엉겨붙던 뜨거운 몸이 다름 아닌 이재규였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안녕.”

식판 위에 노릇노릇 굽힌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얹은 재규가 우유컵을 입에 물고 있다가 오른손으로 옮겨들며 인사를 한다. 윗입술에 하얗게 우유자국이 묻어있는 것에 손을 뻗으려다 그만두고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묻었어.”

치훈의 말에 한손엔 식판을, 다른손엔 우유를 든 재규는 조금 고민하다 혀를 내밀어 낼름 윗윕술을 훑었다. 바알간 혀가 꼬물락거리는 걸 보자니 어쩐지 아랫도리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 치훈은 성급하게 몸을 돌려 배식대로 향했다.

대충 씨리얼이나 먹을 생각이었지만 우유에 말아먹을 생각을 하니 어쩐지 입맛이 동하질 않아 오렌지쥬스와 사과만 집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최치훈, 하고 부른 재규가 손을 들어 제 옆자리를 가리킨다. 소시오패스 혹은 싸이코패스를 줄여 별명이 패스인 자신이 매사 조용조용한 이재규를 무시하고 방으로 올라가버려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만 어쩐지 이미 발걸음은 재규의 옆자리로 향한다.

“오늘은 씨리얼 안 먹네?”

딸기쨈을 바른 토스트를 아삭 베어문 재규가 치훈을 본다. 니가 우유를 핥아먹는 걸 보니까 어쩐지 그럴 기분이 사라졌다,는 사설이야 최치훈답게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묵묵히 사과만 씹었다. 배도 고프지 않으면서 어쩐지 정신없이 먹다보니 심지까지 이빨을 박아넣는 바람에 사과씨도 몇개인가 씹어삼키고 말았다. 발아를 위한 각종 영양소를 비롯 식이섬유까지 씨앗에는 영양분이 많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보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게 되면 유은성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력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객관적으로 가장 완벽한 외모였고 교내에서 인기도 가장 많은 여학생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뭐가 유은성이야?”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입밖으로 소리가 되어나온 줄은 몰랐던 치훈이 재규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너도 좋아하는 애가 있긴 있구나... 하는 재규의 목소리에 조금 실망의 빛이 비친 것은 저만의 착각인가, 치훈은 잠시 고민한다. 일반적인 재규의 목소리를 떠올려 볼 때 톤은 낮았고 말의 속도는 느렸다. 아무튼 부정적인 것은 확실한데 비난인지 실망인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비죽 입을 내민 재규가 먹다만 토스트가 담긴 식판을 들고 일어서더니 먼저 갈게, 하고는 쓰레기통에 음식물을 버리고 위로 올라가버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작은 엉덩이가 계단을 옮길 때마다 움직이는 것이 뭔가 리듬감 있고 보기에 좋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과를 쥔 손가락을 깨물고서 깜짝 놀라 치훈은 눈을 몇번이나 깜빡거렸다. 생각이 엉킨 아침이 혼란스럽다.

‘이재규는 2학년 때 전학 왔고 짝을 몇번인가 한 적이 있었지. 얼굴은 희고 키는 보통보다 큰 편. 성격은 조용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익숙해지면 꽤 수다스러운 면이 있다.’

방에 돌아온 치훈은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특별한 점은 없는데 어째서 몽정의 대상이 된 것인가. 샤프를 손에 꼭 쥐고 꾸벅거리던 옆모습을 보면서 똑바르게 뻗은 코가 부채꼴같다 생각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특기할 사항은 아닌 것 같은데...

반에서 1번부터 떠올리며 재규의 특별한 점을 찾던 치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낸다. 1번은 키가 작다. 그 이상으로는 떠오르는 특기사항은 없다. 그 뒤로 2번부터 15번까지는 주욱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 16번이 바로 문제의 이재규. 뒤이은 17번은 성실한 박무열, 그리고 18번부터 27번까지 다시 공백. 28번은 치훈 자신이었으며 맨 끝번인 29번은 정신없지만 머리는 좋은 듯한 강미르.

자신을 제외한 스물여덟명의 같은반 학우 중 인지하고 있는 것은 달랑 셋. 이쯤 되니 제 넓지 못한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등장인물이로구나 납득은 가지만 언제, 왜, 어떻게 이재규를 기억하게 된 것일까. 유명인사인 박무열과 강미르와 차지하고 남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특별한 것이 없는 듯한 이재규. 치훈은 다시 재규를 떠올리며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다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짓더니 기숙사 방문을 잠그고 티슈를 뽑아 침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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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올라서 휘갈기고 보니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네. 즈질.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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