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2 19:20
Sloppy Fixation
두준요섭준형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너와 걷던 그 길을
눈에 어리는 지난 얘기는
추억일까
다리가 부러져 외출이 쉽지 않은 요섭은 요즘 저렇게 집 지키는 강아지 마냥 베란다에 기대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깥 세상만 보고 앉은 일이 잦다. 좀 불쌍한데 조그만 녀석이 풀이 죽은 모습이라는 건 꽤 귀엽기도 해서 두준은 문자 하는 척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소파에 풀썩 엎드려 요섭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좁은 원룸에 사내애들 여섯을 우겨넣어뒀으니 그걸 못 견딘 현승은 연습실로, 동운은 제 집으로, 기광은 헬스장으로 대피하고 갈 곳 없는 요섭, 만사 귀찮은 준형 그리고 두준까지 셋만 숙소에 남았다. 사실 두준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축구를 할 예정이었지만 막상 나가려니 어쩐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 연습을 핑계로 약속을 취소했다.
"준형아, 밖에 놀러가자."
요섭이 기브스를 한 다리를 질질 끌며 들어와 거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준형을 부르자 준형은 스윽 고개를 들어 베란다로 난 커다란 창을 흘끗 본다.
"비 올 것 같은데."
다른 말로 하면 싫다는 말. 숨쉬기 운동을 제외한 모든 움직임을 귀찮아하는 준형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숙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패션에 민감해서 옷과 신발이 젖는 흐린 날은 더더욱 질색을 하는 것이다. 운동을 싫어하는 것은 요섭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제가 잘 못하기 때문에 싫어할 뿐 기본적으로는 활동적인 편이다. 얼마 전 다리가 부러진 것만 해도 괜히 헬스광인 기광을 따라나섰다가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헬스장에서 어떡하면 다리가 부러지느냐고 한동안 놀림감이 되었고 준형으로부터도 그러길래 집에 가만히 있으라니까, 하고 한소리를 들은 차라 기가 죽었는지 잘라 말하는 준형을 향해 잠시 입술을 비죽였을 뿐 더는 닥달하지 않는다. 다시 베란다로 나가 처량하게 난간에 턱을 걸치고 엉거주춤하게 선 요섭의 굽을 등을 쓱 보고 고개를 돌리다 두준과 시선이 맞부딪힌 준형이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요섭이 신경이 쓰이는 것은 분명한데 나가잔다고 냉큼 같이 나가주기가 민망한 모양인듯 했다. 둘이 사귀는 거 같은 숙소 사는 연습생들끼리는 다들 아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굴건 또 뭔가 싶지만 그게 용준형이니까, 생각한 두준은 몸을 일으켜 식탁 위에 던져둔 지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며 양요섭, 하고 부른다.
“나랑 나갈래? 나 담배 사야 되는데.”
준형의 옆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애꿎은 기브스를 잡아뜯던 손가락을 멈춘 요섭이 그럼 떡볶이도 먹자, 반색을 하며 덜그럭덜그럭 다친 다리를 불안하게 끌며 뛰어온다. 역시 너밖에 없어, 하면서 어깨에 엉기는데 준형이 스윽 쳐다보는 시선이 민망해서 너 그러다가 붙던 다리 다시 부러진다, 말을 돌린 두준이 옷방으로 간다. 뭐 입지 고민하는 새 요섭은 벌써 구겨진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옆에 섰다. 둥둥 걷어올린 트레이닝복 바지에 애니메이션 프린트가 들어간 상의를 입은 요섭은 누가 봐도 중학생, 많이 봐줘야 겨우 고등학생이라고 우길 수 있을 만한 모습이다. 한 해 늦게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생일은 딱 육개월 차이인데 이렇게까지 발육상태가 차이가 나다니. 생긴 것도 좀 외계인 같고 콩알만한게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는 것이 아무래도 지구인은 아니지 싶다.
"준형아, 올 때 뭐 사올까."
신이 나서 설치다가 막상 나가려니 미안한 모양인지 요섭이 조심조심 묻는데 준형은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안 들리는 척 어설픈 연기를 한다. 고막에 안 좋다고 볼륨 작게 해서 듣는 거 다 아는데 그래도 요섭은 속아주는 척 하느라고 대답없는 준형의 등을 보고만 섰다.
“야, 용준형.”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둥그렇게 뜬 요섭의 눈이 안쓰러워서 준형의 한쪽 이어폰을 잡아당겼다. 뭐 사다줘? 물으니까 준형이 콜라- 입모양으로 대답하며 신발장에 기대어 엉거주춤하게 신발을 신고 있는 요섭을 스윽 훔쳐본다.
"우산 챙겨."
그야말로 모기만한 목소리라 이번에는 요섭이 듣지 못한다. 저렇게 신경 쓰일 걸 그냥 같이 가주지. 그래도 그런 말을 하면 자존심 상해 할테니까 두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으, 비온다!"
먹먹한 하늘이 아무래도 불안하더니 담배와 콜라를 사서 편의점을 나오는데 기어이 세찬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뛰어가면 숙소까진 금방이지만 다리가 부러진 요섭을 데리고는 무리라고 판단한 두준이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문다. 아끼는 트레이닝복 바지 끝단이 다 젖어서 조금 짜증을 부리니 요섭이 미안한지 고개를 푹 숙인다. 괜찮아, 뭐 말리면 되지, 하고 웃어주니 금새 표정을 풀고 나란히 두준의 옆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처마 밖으로 손을 뻗는다. 얼굴보다도 커다란 손바닥이 새삼 신기하다. 두준은 콜라만 마시고 운동도 안하는 주제에 비쩍 마른 용준형이나 신체비율이 기묘하게 뒤틀린 양요섭이나 다들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비오는 날 좋던데."
"신발이랑 옷 젖는다고 그러는 거지 뭐. 폼생폼사잖냐."
같이 나오지 않은 준형이 아무래도 섭섭한 모양인지 시무룩한 요섭을 위로할 요량으로 말을 꺼내보지만 그다지 효력이 없는 모양이다. 착한 니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너무 섭섭해하지마. 두준의 말에 요섭은 흙탕물에 손가락을 담궜다 뺐다 어린애같은 장난을 치다 한숨을 포옥 쉬고는 두준을 바라본다.
“두준아.”
나지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습관처럼 두준은 응, 하고 대답한다. 야, 혹은 윤두준, 하고 부르는 보통 녀석들과는 다르게 늘 다정하게 두준아, 하고 부르기 때문인지 이새끼저새끼가 입에 붙은 두준도 요섭만큼은 그런 식으로 부른 적이 없다.
"왜. 불렀으면 말을 해."
뭐가 이렇게 심통이 났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통통한 볼살을 툭툭 건드려도 요섭은 한참을 말이 없이 시무룩한 표정 그대로다.
“너, 준형이 좋아하지.”
쿠궁.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때마침 둘의 앞으로 택시가 요란하가 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아이씨,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태연한 척 엄한데 화풀이를 하며 담배 상자의 비닐의 벗기는 손이 후들후들 떨린다. 겨우 한가치를 꺼내어 입에 무는데 요섭의 시선이 느껴져 왼쪽 귀가 화끈거린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준형도 알고 있을까. 여러가지 의문과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필터를 길게 빨아들였다. 가슴도 머릿속도 부옇게 담배연기로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준형이는 몰라. 걘 사실 똑똑한 척만 하는 바보잖아."
요섭이 하얀 운동화 코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한다. 준형이 봤으면 질색할 일이다. 하얀 운동화에 때 탄다고. 뭐, 자기 신 아니면 아무말도 안 하겠지만.
"준형이랑 사귀니까 너한테 미안하더라."
잔뜩 움츠러든 어깨 때문인지 가뜩이나 조그만게 더 쪼그매보인다. 얘는 아무래도 새끼 고양이같다. 손바닥만해가지고 가르릉가르릉 거리고 보들보들한. 작은 동물같은 거 귀찮아서 키우지는 못해도 귀여워 못 견디는 두준은 거친 사내애들 속에 섞인 요섭이 늘 눈에 밟혔다. 돌이켜보면 준형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래서였다. 늘 안 그런 척, 무심한 척 하면서 요섭의 옆에서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는 준형이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가 잘못 됐다. 용준형 마음이 양요섭한테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멋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딱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뭐 그게 미안할 일이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잦아드는 목소리와 함께 푹 꺾이는 고개가 처량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요섭을 꽉 끌어당겨 안았다.
“바보야, 니가 울면 어떡하냐?!”
미안해서 그러지, 하고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병신같은놈아, 욕을 해야될텐데 요섭한테는 어쩐지 그게 되지를 않는다. 준형이는 그래서 요섭이를 좋아하는 걸까. 좋아할 수 밖에 없어서. 그런데 나는 왜 병신같이 요섭이가 아닌 용준형을 좋아하는 걸까 생각하며 두준은 요섭을 토닥인다.
"그냥 비 좀 맞고 떡볶이 사서 들어가자. 준형이도 같이 먹게."
두준의 말에 요섭이 눈물을 훔치며 덧붙인다. 순대랑 오뎅두.
“응.”
두준은 대답과 동시에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서서 요섭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여자애도 아니고, 툴툴거리면서도 두준의 손을 잡고 영차, 하며 몸을 일으킨 요섭이 베시시 웃는다. 접힌 눈꼬리에 달라붙은 눈물을 두준은 닦아줄까 하다가 그냥 둔다. 조금 울어도 행복하겠지. 네가 기쁘다면, 그래서 준형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하고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닭살이라 두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앞장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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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쓴 거라서 포텐이 터진 지금(...) 보니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