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9 23:23
Sloppy Fixation
치훈재규
‘...흑체가 적외선을 흡수했다면 가열될 경우 내부의 복사에너지가 다시 빛을 발산하고 그렇다면 흡수된 에너지와 발열 되는 에너지가 동일하다는 빈의 변위 법칙은 성립해야 맞는 것인데 어째서 실험은 가능하고 이론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거지?1'
‘...흑체가 적외선을 흡수했다면 가열될 경우 내부의 복사에너지가 다시 빛을 발산하고 그렇다면 흡수된 에너지와 발열 되는 에너지가 동일하다는 빈의 변위 법칙은 성립해야 맞는 것인데 어째서 실험은 가능하고 이론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거지?1'
봄바람이 따뜻해서 강의실에서 드물게 졸기까지 했던 치훈은 봄내음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며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양자역학 강의의 내용을 되짚었다. 증명되지 않은 공식이나 현상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당장은 백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은 이 공식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졌기 때문에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 증명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싶어져 긴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요.”
누군가 슬쩍 옆에 다가서는 바람에 치훈은 걸음과 함께 생각을 멈추고 조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정수리를 덮은 머리카락 아래로 하얗게 올라온 코끝이 보인다. 손에는 지도가 로딩된 핸드폰이 들려있다. 길을 잃은 모양이다. 가뜩이나 큰 캠퍼스인데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보니 신입생들은 보통 헤매기 마련이었다. 치훈도 일학년 때는 넋을 놓고 걷다가 처음 보는 건물을 마주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그래도 당황스럽지는 않았던 것이 한번 본 지도정도는 좋든 싫든 이미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자신의 말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귀끝을 보니 아마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보다, 치훈은 생각한다. 본인에게는 없지만 학습으로 알게 된 감정 중의 하나.
“1학년 기숙사요.”
가뜩이나 길치라서 핸드폰만 믿고 왔는데 뭔가 이상해서요... 하면서 내밀어진 핸드폰에 빨간 화살표가 그려진 곳은 과연 1학년 기숙사동. 나침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길을 잃게 된 모양이었다.
“가는 길인데 같이 가요.”
잠시 잊고 있었던 빈의 변의 법칙이 다시 떠오르자 치훈은 남자에게서 몸을 돌려 걸음을 서둘렀다. 지나치게 큰 캠퍼스는 이런 때에 매우 불편하다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학학, 밭은 숨소리가 들린다. 안내를 맡고 있는 동행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귀끝뿐 아니라 얼굴과 목까지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남자애가 열심히 치훈을 따라 걷다가 멈춰선 치훈을 보고는 살았다, 하는 얼굴로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보드라워 보이는 하늘색 캐시미어 스웨터 위로 굽은 등의 척추모양이 드러난다.
“키가, 하아, 크니까, 하아, 걸음이, 하아, 빠른가봐요.”
“미안해요.”
말을 하고 보니 별로 미안할 일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치훈도, 치훈의 주변사람들도 치훈의 감정결핍에는 익숙해져있어서 새삼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벚나무 많아서 캠퍼스 되게 예쁘다. 사실 공부 잘 하는 애들만 있고 좀 삭막할 줄 알았는데 좋은 것 같아요.”
때마침 부는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발을 맞추어 걸어가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꺼낸다. 시선을 맞추며 동의를 구하기에 대충 끄덕여주었다.
“저기, 기숙사.”
초콜릿색 벽돌 건물이 보여서 손을 들어 가리켜주었더니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다지 대단한 건물은 아닌데. 외관도 그렇지만 방음이 제대로 안되는 얇은 벽이라던가 오래 되어서 수압이 약한 화장실 등등 속은 더 부실하기 그지없는데 이 사람이라면 어쩐지 만족하고 잘 지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지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관 사무실 방향을 짚어주고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바람에 조금 무안해진 치훈이 결국 입을 열었다.
“동갑일텐데 뭐 그렇게까지...”
치훈의 말에 남자가 동그랗게 뜬 눈을 껌뻑거린다. 어깨 위에 엷은 분홍빛 꽃잎이 몇장인가 올라가있는데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어 구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럼 같은 일학년?”
“학년은 이학년이지만.”
아, 과학고 출신이구나 석사과정이거나 조교일 줄 알았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혼잣말과 함께 고개도 몇번인가 끄덕거리는 폼이 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귀엽다고 생각해본 건 조숙해서 알 건 다 아는 주제에도 가끔 오빠라고 챙겨주는 여동생들이 다였는데.
사무실로 가려던 남자애가 치훈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으니 걸음을 떼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같이 마주 보고 섰다가 손을 내민다. 난 재규라고 해, 이재규. 앳된 얼굴과는 달리 내밀어진 하얀 손은 의외로 단단한 이십대 청년의 그것이라서 조금 놀랐다.
“최... 최치훈.”
내밀어진 손을 잡고 이름을 내뱉은 치훈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재규는 활짝 웃었다.
“너 꽃잎 묻었다.”
팔을 들어 치훈의 가슴팍에 달라붙어있던 꽃잎을 떼어내 손끝에 올리고 후- 분 재규가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뜬다. 촘촘하게 난 속눈썹이 내려앉은 것을 보는데 어쩐지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원 빌었어.”
“...무슨 소원?”
“치훈이랑 친한 친구 되게 해주세요.”
장난스럽게 한쪽 눈썹을 올려 찡긋거리는 재규를 보면서 치훈은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기분을 정의하기 위해 이것저것 감정의 종류들을 떠올려본다.
“너 근데 볼 일 있는 거 아니었어? 되게 빨리 걸었잖아.”
“아...”
잊고 있던 빈의 변위 법칙이 떠올랐지만 어쩐지 재규의 뒷모습이 사무실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치훈은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봄이 오면 마음에 흐드러지게 꽃이 핀다.’
시덥잖은 소설이라 생각하며 읽었던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떠올라서 치훈은 왼쪽 가슴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다 죽었는데 납득할 수 없던 그 결말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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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재규는 사실 좀 여우.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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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재규는 사실 좀 여우._^_
- 여기(http://mybox.happycampus.com/ddddark/1887655/?agent_type=naver) 보고 대충 줄여본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확률이 99.9%... [본문으로]